작성일 : 04-12-17 16:24
[맑고 향기롭게] 법당 주춧돌에까지 연꽃이 핀 절
 글쓴이 : 정찬주
조회 : 1,799  
법당 주춧돌에까지 연꽃이 핀 절
-달마산 미황사-

정찬주(소설가)
'맑고 향기롭게'라는 책자에 실린 글입니다.

나그네는 '미황(美黃)'이란 이름에 먼저 반한다.
고적해서 더 아름다울 것 같은 느낌이다.
일출의 눈부심이 아니라 석양의 거룩함이 배어 있는 이름이다.
누른 목조의 반가미륵사유상에 이름을 붙여준다면
나그네는 망설이지 않고 '미황'이라 하겠다.
깨달음을 조용한 미소와 깊은 사색의 자태로 표현한 경지를 미황이라 부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산이름은 달마산이다.
달마가 누구신가. 선불교의 초조이자 진리의 상징이 아닌가.
절대 권력자 진시황이 왕도(王道)의 허망함을 보여주었다면
달마는 법도(法道)의 길을 걸었던 바,
그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도 진리의 상징으로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 진리의 산자락 안에 '미황'이란 이름의 집이 안겨 있다.

지금의 미황사는 이곳 저곳을 손보고 있는 중이어서 조금은 어수선하다.
누군가는 작은 절인 줄 알았는데, 뜻밖의 규모에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 뒤로 솟은 달마산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씻어지리라.
금강산의 한 자락 같은 달마산의 수려한 산세에 균형감각이 되살아난다.
산세에 어우러지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감각이 드는 것이다.

나그네는 방에 들어서도 계속 '미황'이란 화두를 든다.
주지 금강 스님의 설명은 이렇다.
'미황'은 이미 창건 설화 속에 작명되어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의조스님이 미황사를 창건했다고 하니
설화도 천년이 넘은 이야기인 셈이다.

설화는 사자포 앞바다에 한 척의 돌배(石船)가 나타남으로 해서 시작한다.
달마산의 미타굴에서 정진하고 있던 의조스님이 몸을 정히 씻고 난 후
시좌 장윤, 장선과 더불어 대중 100여명을 데리고 나가자 마침 돌배가 바닷가에 닿는다.

돌배에 오르니 인도의 국왕 보살(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상자 속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40성중(聖衆), 53선지식, 16나한, 탱화 등이 보였다.
그날 밤 의조스님의 꿈에 국왕 보살이 나타나 말하였다.
"금강산이 1만 부처님을 모실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절이 들어서서
모실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중에 여기가 인연 있는 곳인 줄 알고 멈추었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면 불교가 흥할 것이오."

그리하여 경전과 불상을 가지고 가던 소가 처음 멈춘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으로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고 한다.
특히 마지막 멈춘 곳에서 소의 울음 소리가 그윽하고 아름다웠다고 해서 미(美)자를 쓰고, 금빛인 국왕보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황(黃)자를 합하여
'미황'이라 했다는 절 이름에 얽힌 설화이다.

날빛이 저물 무렵 절에 듣 탓으로 다음 날 아침에야 금강스님과 절을 둘러 보는데,
미황사는 달마산 속의 거대한 화랑이다.
그냥 절이 아니라 종교라는 틀에 안주하지 않고
걸림없는 상상력과 자유를 누렸던 거대한 미술 전시관인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 파격은
굳어진 틀을 용납 않는 거부이자 기존의 것을 넘어선 자만이 갖는 여유이다.
물론 절에 새겨진 파격적인 조각은 석공의 작품이지만
그것은 당시 절에 머물던 깨인 스님의 묵인하에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러므로 의기투합한 공동창작인 셈인 것이다.
계율에 매이지 않고 승속을 넘나들던 당시 스님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법당의 주춧돌을 보라.
돌연꽃이 피어 있다. 그런가 하면 사자포 바닷가에서 기어다니던
돌게 한 마리가 햇볕을 쬐고 있다.
돌연꽃은 활짝 핀 것도 있고, 봉오리가 막 열리려는 것도 있다.
게가 주춧돌에 새겨져 있다니 얼마나 신선하고 웃음짓게 하는 일인가.
게는 바닷가 사람들의 양식이 아닐 것인가. 바다의 비린내가 풍길 만큼 사실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법당 뜨락의 어성초 향기를 맡으며 부도탑을 가보면 화랑으로서 진면목이 드러난다.
수십 기의 부도는 불쑥불쑥 솟은 돌불꽃 같다.
부도에 새겨진 용과 도깨비와 거북, 물고기, 새, 토끼, 청설모, 연꽃 등을 보려면
한 나절은 걸린다.
물고기와 게가 장난을 치는 조각도 있고,
아랫다리 살이 통통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조각도 있다.
보는 이의 심상에 다라서 모습을 달리하는 동물도 있다.

네 군데에 부도탑이 있는데
모두가 엄수과 정형을 깨뜨린 조각으로서 낭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미황사는 굳이 사적기를 들출 것도 없이 이 부도탑만으로도
당시 스님들의 정신 세계가 답답하거나 쫀쫀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육신처럼 땀내 나고 불륜의 사랑처럼 역동적이었으리라 짐작이 가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미황사에는 하나 더 얘기할 자랑이 있지만 남겨두는 것도 미덕이므로
오늘은 이만 접는다.
서산대사가 임진왜란 중에 창안한 진법군고(陳法軍鼓)가
미황사 스님들에게 전수되어 오다가 현재는 해남의 농악 속에 그 흔적이 남아 있지만
다음의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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