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5-30 09:19
미황사의 카리스마는 당신을 무장해제 시킨다- 오마이뉴스
 글쓴이 : 금강
조회 : 236  

사람도 풍경이 되는 절집, 미황사
별이 쏟아지는 산사에서의 하룻밤

03.10.31 12:03l최종 업데이트 03.10.31 16:26l

장권호(sandl06)




숲과 대지가 근원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는 11월은 첼로의 저음처럼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루에 백 리씩 남하한다는 단풍 길을 따라 한반도의 끝자락 해남 땅, 아름다운 절 집 미황사를 찾아간다.


광주에서 나주와 영암을 거쳐 해남으로 이어지는 13번 국도가 최근 해남까지 4차선으로 말끔히 단장돼, 쾌적한 속도감을 즐기며 남도의 그림 같은 가을 들판을 만끽할 수 있다. 추수 끝난 빈 들판 여기저기서 볏짚 태우는 연기가 오르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어 가는 느티나무의 자태가 너무도 고운 남도의 늦가을 풍광은 지금이 절정이다.
 
남도 땅을 가로지르는 호남정맥의 한 줄기가 서남쪽으로 훌쩍 뛰어 영암의 월출산을 거쳐 해남의 두륜산과 달마산으로 흐르다 땅끝 사자봉으로 치달아 바다로 빠져 들어간다. 남으로 3000리를 달려온 백두의 산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반도의 끝자락 해남 땅에 온 힘을 모아 명산 달마산을 토해놓으니 호사가들은 일찍이 호남의 금강이라 일컬어 왔다. 바로 그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 달마산 품속에 슬픈 전설처럼 곱게 늙어 가는 절집 미황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20세기 말에 실현된 중창불사의 꿈

미황사는 749년 신라 경덕왕 8년에 창건된 이래 조선 전기까지 꾸준히 사세를 유지해 오다 정유재란 때 건물과 기록들이 모두 소실되어 버린다. 임란 이후 몇 차례 중창을 거쳐 대둔사와 함께 호남불교의 맥을 이어오던 미황사는 150여 년 전 주지 혼허(渾墟) 스님이 미황사 중창불사를 위해 대규모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를 향하다 40여 스님들과 함께 조난을 당하면서 사세가 급속히 쇠락하게 된다.

이후 미황사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황폐화되는데, 1989년 지운스님과 현공스님, 금강스님이 주인 없는 미황사에 찾아든다. 물거품으로 사라질뻔 했던 중창불사의 꿈이 150여 년이 지난 20세기 말에야 세 분 스님의 인연으로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세상을 향해 열린 절집
 
마을 주민들과 함께 스님이 지게를 지고 포크레인을 직접 운전해 가면서 흔적만 남아 있던 명부전, 만하당, 달마전, 세심당, 안심료 등의 전각들을 복원하고, '작은 음악회''한문학당''템플 스테이''노을맞이 해맞이 기원법회'등의 다양한 문화체험 행사와 열린 사찰 운영으로 그 이름이 알려지면서 미황사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으로 태어나게 된다.

예불 시간만 빼곤 하루 종일 지게 지고 잡초 뽑는 금강 스님을 마을 사람들은 지게 스님이라고 부른다. 금강스님은 미황사 홈페이지를 전국 사찰 중에서 가장 알찬 정보로 채워 직접 관리하는 멋진 스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황사의 다양한 문화체험과 각종 법회가 불자(佛者)만을 위한 협소한 행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지치고 사람에 지친 이들은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이 고즈넉한 사찰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다. 그래서 금강 스님의 세심당 서재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스님과 다담을 나누는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도 절집도 모두 풍경이 되는 절집 마당
 
평생을 한국미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으로 사셨던 혜곡 최순우 선생은 강산만리의 이 아름다운 자연풍광 속에 멋들어진 집 한 채 지어낼 수 있는 한국인의 안목과 솜씨를 예찬했다. 금방 헹궈낸 빨래보다 투명하고 고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안온하게 늙어가고 있는, 달마산 미황사에 와 보면 혜곡 선생의 말씀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미황사의 참모습은 공룡의 등뼈를 연상케 하는 장장 12km에 달하는 달마산 주능선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가람 전체의 조화에 있다. 옛 스님들이 가람터를 정하고 건물의 위치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배경이 될 산세였다고 한다. 따라서 배산 달마산과 절집이 완벽하게 일체를 이룬 미황사의 환상적인 궁합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주문도 해탈문도 없는 미황사의 진입의식은 보제루 계단을 통해 곧바로 절마당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계단을 통해 절마당으로 오르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대웅보전 지붕 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의 수려한 산세에 완전히 압도, 한 순간도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부처님께 예불 드리는 것도 잠시 잊은 채 절 마당 통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하염없이 앉아 먼 산 바라보는 사람들. 산 한 번 바라보다가 대웅전 한 번 바라보고 그저 그 뿐이다. 그냥 하염없이 앉아 있을 뿐이다. 사람도 절집도 모두 풍경이 된다. 누더기 같이 낡은 말들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오십 년 가까이 부려온 누추한 몸과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버겁고 힘든 삶의 짐도 잠시 내려놓는다. 지친 육신과 마음으로 미황사를 찾았던 장선우 감독도 그래서 그렇게 펑펑 울다가 산을 내려갔었나 보다. 사람을 순식간에 무장 해제시켜 버리는 미황사의 카리스마를 난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저녁 햇살에 빛나는 부도전
 
이제 부도전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호젓한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10여 분이면 도달하는 부도전은 요요(遙遙)하다. 모두 조선 중후기를 넘지 않는 27기의 부도와 탑비들은 그 격에 있어 소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치기(稚氣)어린 솜씨로 새겨진 거북, 게, 새, 두꺼비, 연꽃, 도깨비 얼굴의 문양들은 장욱진의 후기 그림을 연상케 한다.



전대(前代)의 부도에 비해 형태나 장식이 질박하고 소박해 다소 세련미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이를 새롭고 다양한 부도 양식의 등장으로 금강스님은 해석한다. 종래의 형식화된 창작 태도에서 벗어나 이 땅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을 문양 의장으로 채용, 발전시킨 이런 창조 정신을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의 등장과 같은 맥락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육(肉)의 땅에서 주어진 생명을 성심으로 소진하고 이제 영원의 숲에 누워있는 부도전의 영혼들은 평화 그 자체다. 새소리도 그치고 바람마저 잠들어버린 부도전 주변으로 어둠이 밀려온다.

여행의 마무리
 
미황사 가는 길은 멀고도 아득하다. 그래서 남도 땅 그 외진 절집은 아직 때가 묻지 않았다. 또한 사람을 반기고 귀히 여길 줄 안다. 이왕 큰 맘 먹고 나선 길이라면, 미황사 길목인 삼산면에 들러 김남주 시인과 고정희 시인의 생가도 찾아 보는 것도 좋을 듯. 땅끝 마을 갈두리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다도해의 환상적인 해넘이도 놓쳐서는 안 될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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