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5-31 16:19
슬픔은 눈녹듯이-- DOMESTIC TRAVEL
 글쓴이 : 금강
조회 : 310  

DOMESTIC - DOMESTIC TRAVEL

땅끝마을 산사에 내리는 눈



육지 최남단 사찰인 해남 미황사는 시작과 끝을 잇는 점이다. 땅끝에서 맞이하는 새 눈, 새날, 새 마음.







볕 좋은 일요일 아침이다. 절간에 여우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쌓인 눈, 묵은 얼음 더께가 녹아 나뭇가지며 처마 끝으로 떨어진다. 똑, 똑, 똑. 목탁 치는 소리와 낙숫물 고이는 소리가 겹쳐 들린다. 툇마루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모든 게 사라진 마음의 풍경에도 볕이 스민다. 새로운 날을 그렇게 맞고 있었다.




땅끝마을 가는 길



오전 7시 30분, 강남 센트럴시티터미널. 동트는 하늘을 보며 해남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한반도 제일 끄트머리에 자리한 절, 미황사에 닿아보고 싶어서다. 지난가을 우연히 만난 그림 한 점이 발단이다. 사무실 건물 뒷길의 갤러리를 지나다 <큰부처님 나투시다>라는 제목의 전시 포스터를 봤다. 인사동엔 널린 게 불교 화랑이요, 고만고만한 탱화인지라 여느 때 같으면 무심코 넘겼을 텐데 ‘나투시다’라는 고어에 마음이 움직였다. 아라아트센터 전시장에는 과연 큰부처께서 현현해 계셨다. 오묘한 기운이 만면에 감돌았다. 지하 3, 4층 전시관의 세로 폭을 꽉 채운 괘불탱은 높이가 12미터에 달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전시 설명을 읽었다. “이 불화는 보물 1342호로 지정되어 보관하고 있는데 세계 회화사적으로도 이렇게 큰 그림은 드물다.…(중략)…불화가 훼손될까 염려되어 문화재청의 도움으로 1:1 크기의 현상 모사를 3년 동안의 노력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말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주지 금강 합장.” 가도 가도 멈출 줄 모르던 버스가 충남 정안 휴게소에 정차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때 그 부처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 때나 괘불탱을 ‘친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회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괘불재뿐이다. 다만 큰부처님을 모신 땅끝마을이라면 새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2시간을 내달려 해남터미널에 도착했다.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미황사행 버스는 내린 자리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한다. 버스를 환승해 1시간을 더 들어가야 미황사에 닿는다. 종무소에서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3시 30분. 출발한 지 꼬박 8시간 만이다. 경내에 발을 들이는데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싸라기눈에서 금세 탐스러운 함박눈으로 변한다. 미황사와 달마산은 곧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황금빛 피부를 지닌 먼 옛날 인도의 왕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절을 지었다는 전설로부터 ‘아름다울 미美’자에 ‘누를 황黃’자를 따서 쓴다. 그 뒷산은 달마대사도 머물다 갈 만큼 수려하다고 해서 달마산이라 불린다. 자연이 일필휘지로 그려낸 병풍을 뒤로하고 이불보와 베갯잇을 챙겨 배정받은 방사로 향했다. 아담한 개인 방사에는 다구 외에 어떤 물건도 놓여 있지 않았다. 이불마저 벽장에 들었다. 문간에는 ‘미황사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템플스테이 스케줄이 붙어 있다. 도량석, 새벽예불, 참선, 공양, 울력, 수행, 습의, 차담…. 적막해 보이는 산사의 생활은 사실 이렇게나 바삐 돌아간다. 미황사의 템플스테이는 크게 7박 8일간의 수행 집중형 템플스테이 ‘참사람의 향기’와 휴식형 템플스테이의 2가지로 나뉜다. 미황사는 어느 곳보다도 수행에 집중하는 사찰이다. 충분히 머물며 체험하는 전자가 좋겠지만, 도시에 매인 몸에겐 후자도 감지덕지다. ‘정돈’과 ‘묵언’을 줄곧 강조하는 미황사의 생활 강령을 따르다보면 잠깐이나마 마음을 닦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이곳에서 가장 먼저 체험하는 것은 습의다. 합장하는 법, 삼배하는 법, 예불 과정과 순서 등 사찰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예절을 배우는 시간이다. 불경스럽지만 습의보다도 마음이 쓰이는 건 대웅보전의 단청이다. 낡은 나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이곳의 단청은 해풍에 씻긴 지 오래다. 바깥 칠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나마 안쪽에 겨우 알아볼 정도로 남은 색깔에서 과거의 화려함을 짐작할 뿐이다. 반면 대들보의 천불은 건재하다. 여기선 세 번만 절해도 삼천배를 할 수 있다는 우스개가 전해온다. 습의 다음엔 공양이다. 검박한 의식주로 생활해야 하는 절이지만 몇 차례 경험해본 바 절밥만 한 별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싱싱한 채소, 최소한의 양념으로 만든 음식은 정성스럽고 건강하다. 된장국에 밥을 말아 한술 뜨는데 그 구수한 맛에 눈이 번쩍 뜨인다. 다시 불경스러운 기분에 사로잡힌다. 저녁 공양을 하고 응진당 앞뜰에 섰다. 동백꽃이 머리 위로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떨어진다. 눈보라와 짙은 안개가 남해를 반투명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멀리 진도 앞바다의 섬들이 아른거렸다. 문득 서럽다. 차담 시간에 한 참가자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했던 게 떠올랐다. “지난해는 유독 힘겨웠거든요.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어요.”




슬픔은 눈 녹듯 스러지고



새벽 4시. 새벽 예불을 알리는 목탁 소리, 종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주지 금강스님을 따라 예불문을 낭독하고 반야심경,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으로 의식을 갈무리하면 참선으로 넘어간다. 양 엄지를 맞대고 나머지 손가락을 포갠 수인 ‘법계정인’, 왼 다리를 오른 다리에 살짝 올린 ‘반가부좌’가 기본 자세다. 온몸의 긴장을 풀고 허리를 세운 채 ‘무심한 시선’을 한 점으로 고정하면서 긴 호흡을 유지하는 게 관건. 평소 ‘멍 때리기’에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른 새벽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했다. ‘참 나’를 발견한 건 ‘울력’ 시간에서다. 절 식구들이 모두 모여 필요한 노동을 함께하는 것을 일컫는 울력은 사찰 생활을 이루는 큰 축이다. 봉투를 접어 새해 달력과 사찰 소식지를 동봉하는 것이 오늘의 임무. 직업적으로 서류 봉투를 다루는 일이 손에 익은 덕에 주지 스님께 ‘손이 야물다’는 칭찬을 들었다. 머리를 비우고 손을 바쁘게 놀리는 동안 일하는 즐거움을 아주 오랜만에 느꼈다. 볕 좋은 일요일 아침이다. 절간에 여우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쌓인 눈, 묵은 얼음 더께가 녹아 나뭇가지며 처마 끝으로 떨어진다. 똑, 똑, 똑. 목탁 치는 소리와 낙숫물 고이는 소리가 겹쳐 들린다. 툇마루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모든 게 사라진 마음의 풍경에도 볕이 스민다. 새로운 날을 그렇게 맞고 있었다. 슬픔도 같이 녹았을까, 마음이 가벼워져서 산책을 나섰다. 달마산 끄트머리에 있다는 도솔암을 보러 눈이 소복하게 쌓인 숲길을 걸었다. 40~50분을 걸어가니 험준한 바윗길이 나타난다. 눈만 안 왔어도 건너는데. 아쉬운 마음으로 발을 돌려 부도전을 향했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이 끝나자마자 제자들을 남쪽으로 보냈다. 그 제자 승려들의 사리를 모신 곳이 바로 부도전이다. 부도전 건물 뒤꼍의 표지판은 위쪽 화살표가 달마산 정상을, 오른쪽 화살표가 국토 최남단과 도솔암을 가리킨다. 거기서 배 타고 나가면 윤선도의 보길도에도 닿는다. 다가오는 10월엔 시간을 넉넉히 잡고 괘불재도, 도솔암도, 해남 땅끝마을도 둘러보리라 다짐하며 돌아 나선다. 일주문을 빠져나오는데 눈 속에 얼었던 동백꽃이 녹아 있다. 올 한 해가 지금 이 순간처럼만 아름답고 따뜻하기를.





[ 미황사 숨은 이야기 ]



1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엔 게와 거북이 그려져 있다. 바다에 맞닿은 지역의 특징을 살린 건축적 표현이다.

2 삼존상을 모신 여느 괘불탱과 달리 미황사 괘불탱은 큰 본존불을 모시고 용왕과 용녀를 양옆에 그려 넣었다. 해안가 사찰의 특색.

3 12×5미터의 괘불탱을 완성하는 데 조선시대 최고의 화승 7명이 필요했다. 괘불탱을 들고 움직이는 데도 장정 7명이 필요하다.

4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전각은 응진당이다. 앞뜰에 서면 붉게 물든 남해와 미황사 경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2015년 1월호>

에디터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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