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12-17 16:19
[전라도 닷컴] 땅보다 하늘이 훨씬 넓은 절
 글쓴이 : 전라도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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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라도 닷 컴에 미황사를 소개한 글입니다.
여래향 님께서 게시판에 올려서 알았습니다.
별이야기에 사진도 함께 올리면 좋을텐데 올려지지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땅보다 하늘이 훨씬 넓은 절 -해남 달마산 미황사

무더기로 피어난 진달래의 행렬이 끝나는 곳에 미황사가 있다. 산 아래에서부터 피어 올라오기 시작한 진달래는 지금 절 마당에 닿아 있다. 한 열흘 시간이 지나면 달마산 정상까지 진달래가 피어오를 게다.
붉은 꽃송이를 점점이 떨어트리고 있는 아름드리 동백도 눈을 즐겁게 한다. 이제는 철이 지나 가지에 붙어있는 꽃보다 땅에 떨어진 것이 더 많지만 땅에 있는 꽃봉오리조차 아름다워 행여 밟을까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동백과 진달래에 맞추던 시선을 한 번 들었더니 석축 계단 사이로 대웅전 머리가 갑자기 나타난다. 계단을 한 칸 오를 때마다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사찰이 조금씩 떠오르듯이 미황사는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내 마지막 계단을 딛고 올라섰을 때 받은 느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산과 절이 서로 어우러져 구분이 없다. 산이 절이고 절이 산이다. 하늘은 산에 올라 손만 길게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깝게 느껴진다. 이 봄 미황사에서는 땅보다 하늘이 훨씬 넓다. 아지랑이와 황사에 가려 시선이 먼 곳에 가 닿지 않기 때문이다. 금강스님(미황사 주지스님)은 사람들에게 가까운 곳을 먼저 보라고 그러는 것이란다. 하긴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아름다움을 두고 먼 곳으로 먼저 시선을 돌린다.

부도 밭에 있는 사적비(1692년: 숙종)에는 미황사 창건설화가 전한다.
신라 경덕왕 8년(749) 돌배(石船) 한 척이 사자포(땅끝마을) 앞 바다에 나타났다. 며칠동안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가오기를 반복하였다. 이에 의조(義照)화상이 제자들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하자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 안에는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었고 금함(金函)과 검은 바위가 있었다. 금함 안에는 화엄경·법화경과 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 등이 들어 있었고, 검은 바위가 깨지면서 검은 소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날 밤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이 나타나 "나는 우전국(인도)의 왕이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안치하면 국운과 불교가 크게 일어날 것이다"고 하였다.
다음날 의조화상이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달마산 중턱에서 한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한참을 가다가 다시 넘어지더니 소는 일어나지 못했다. 의조화상은 소가 처음 멈췄던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세웠다. 절 이름은 소의 울음소리가 매우 아름다워 '미'자를 넣고 금인의 빛깔에서 '황'자를 따 '미황(美黃)사'라 했다 한다.

오랜 세월에 씻겨 단청이 지워진 대웅전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일러주는 것 같다. 대웅전 안에는 천 불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금강스님은 미황사 대웅전에서 세 번만 절을 올리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부처님이 천 분이시니 세 번이면 삼천 배가 된다. 믿기지 않으면 당장 시험해 보라 하니 미황사에 가면 대웅전에서 꼭 세 번의 절은 하고 올 일이다.

대웅전 주춧돌에는 다른 절에서는 보기 힘든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문양인데 미황사가 위치한 곳이 바다와 접해 있기도 하지만 용궁의 개념이 더 크게 작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용궁은 보물을 보관해 두는 곳이다. 대웅전도 마찬가지다. 그 보물은 다름 아닌 부처님의 경전이다. 실재하는 것은 없지만 마음에 두는 보물인 셈이다. 미황사 대웅전에 들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매월당 김시습은 '낙산사 일출, 미황사 낙조'라 했다. 미황사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멀리 보이는 진도 앞 바다와 어우러져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만든다. 특히 6월과 9월에는 지는 햇빛이 정면으로 대웅전에 파고든다. 하루해의 마지막 빛이 불상에 닿아 대웅전 안을 일순간 환하게 만들고 바다로 지는 것이다.

대웅전 옆에는 아담한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 안에 있는 10대 시왕을 조각해 모신 사람은 공재 윤두서다. 그가 명부전에 10대 시왕을 모신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어 절 근처에 있던 은행나무를 베어 10대 시왕을 조성했는데 그 후 신기하게도 10명의 아들을 보았다 한다. 더욱 믿지 못할 일은 시왕 중 네 번째 시왕의 두 눈 크기가 실수로 서로 다르게 조각되었는데 그의 넷째 아들도 그랬다고 한다.

미황사에는 높이가 12m에 폭이 5m나 되는 괘불이 있다. 그 크기가 커서 괘불을 거는 데만 30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이 괘불은 다른 괘불처럼 야외 법회 때 걸기도 하지만 또 다른 용도로도 쓰여져 왔다. 가뭄이 극심할 때 이 괘불을 걸고 제사를 지낸 연후에 달마산 정상에 올라 불을 지피면 비를 내려준다고 한다. 금강스님의 말로는 92년에도 이 괘불이 비를 만들어왔다고 한다. 극심한 가뭄이었던 그 해 마을 사람들이 절로 찾아와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내줄 것을 간청했다. 금강스님은 마을 사람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기우제를 지냈는데 신기하게도 제를 지내고 서너 시간이 지나자 달마산으로 먹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대웅전에서 남쪽으로 난 한적한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부도 밭이 나온다. 대웅전의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게와 거북이 문양이며 오리, 물고기, 문어, 원숭이, 토끼, 화초들이 새겨진 부도들은 종교적인 장엄보다는 장난기 어린 파격이 강조되어 있다. 이 부도들은 모두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동쪽에 21기, 서쪽에 6기가 세워져 있다. 이 시기에 이렇게 많은 부도가 조성된 곳은 대둔사와 미황사 뿐이라고 한다.

금강스님이 내주신 차 한 잔 마시고 사는 얘기에 취해 한참을 머물다가 돌아 나서는 길에서 뒤돌아본 미황사, 스님처럼 맑은 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산으로 진달래가 한 뼘쯤 더 피어올랐다.


정상철 기자(dreams@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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