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8-25 09:41
미황사 힐링스테이-국제신문
 글쓴이 : 지혜
조회 : 1,041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scRIPT type=text/javascript src="http://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show_ads.js"> </scRIPT>

- 짧은 출가에서 얻는 마음의 고요함

- 부처님께 예불, 참선 묵언수행…
- 낙조 황홀경 구경 뒤 맑은 녹차 한잔
- 천년고찰서 하룻밤 쉽게 잠 못들고…
- 범종·예불소리 산사의 아침을 깨워
- 108배 도전 몸은 힘들어도 마음 정결
- 땅끝마을서 새로운 '시작' 마음 다짐

올해 여름휴가의 주요 키워드는 힐링(치유)이다. 온갖 스트레스에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공기 맑고 조용한 곳에서 그저 무념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고 또 일 년을 살아갈 힘을 얻고자 하는 바람이 여기에 담겨 있다.

여름휴가 특집으로 '숲으로의 치유여행'(본지 지난 7월 20일 자 커버스토리 B1, 2면)에 이어 이번에는 절로 힐링여행에 나섰다. 절에서 1박2일 동안 명상 다담 등 여러 체험을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야말로 힐링여행의 모든 요소를 종합하고 있다. 땅끝마을이 있는 전남 해남의 미황사로 1박2일간 '힐링캠프'를 떠났다.

   
템플스테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전남 해남 달마산 자락에 위치한 미황사의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소문이 날 정도로 아주 알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시간이 맞았던 서울 친구와 함께 가기로 하고 예약을 마쳤다. 그리고 책장에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을 꺼내들었다. 책에 덮인 먼지를 털며 책장을 펼쳤다. 1권의 1편은 해남 강진 등 남도여행이었다.

나의 남도여행은 대학교 1학년 때 첫 여름MT로 갔었으니 17년 만이다. 해남 땅끝마을과 강진 다산초당 등지를 둘러보았고 보길도에서 윤선도의 자취를 찾기도 했다. 까마득한 밤 보길도 바다 자갈마당에 누워 올려다본 그 많은 별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싶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엉뚱하게도 남도여행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이 발간돼 전국적으로 답사여행 바람이 일었다. 당시 책에 흠뻑 빠진 나는 빨리 대학생이 되기를 기도했다. 남도로 떠나고 싶은 마음은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한 커다란 동기부여였다.

그 길을 17년 만에 다시 갔다. 그러나 모습은 달랐다. 당시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저자의 말을 종교마냥 받들며 미지의 세계로 떠난 여행이라면, 지금은 치유를 위해 떠나는 것이었다.

지난달 26일 아침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해남으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 남도여행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20년 전쯤에 쓰인 글이라 지금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강진에서 다산과 추사의 궤적을 좇으며 백련사와 대흥사, 일지암의 내력을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정작 미황사 부분은 다음과 같이 아주 짤막했다.

'땅끝으로 가는 들판을 가로지르다 보면 공룡의 등뼈 같은 달마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정상 가까이에 고색창연한 미황사라는 아름다운 절이 있다. 미황사 대웅전 높은 축대 한쪽에 걸터앉아 멀리 어란포에서 불어오는 서풍을 마주하고 장엄한 낙조를 바라볼 수 있다면 여러분은 답사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오후 1시 넘어 해남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해 2시5분 미황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미황사에 내리니 3시쯤 됐다. 템플스테이 신청을 확인한 뒤 옷을 받고 숙소로 향했다. 남들보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운 좋게도 개인욕실이 딸린 방을 배정받았다. 방 크기는 3~4명이 들어갈 정도여서 가족단위로 템플스테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알맞다.

■미황사의 석양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 오후 5시에 대웅보전으로 집결했다. 사찰예절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1박 2일간의 템플스테이 공식일정은 시작됐다. 시작부터 한 소리를 들었다. 절 예절상 양말을 신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무더위에 양말을 신을 생각조차 못했던 우리는 부끄러운 맨발을 감추느라 분주했다.

큰절하는 법부터 배웠다. 이마, 양 팔꿈치, 양 무릎을 땅에 닿게 하는 것으로 엎드렸을 때 두 팔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올려 지혜를 구한다. 법당에 들어가면 반배(합장절) 이후 3배를 하는데 마지막 절을 한 다음에는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이마와 바닥 사이에서 합장해 1~2초간 소원을 간단히 기원한다. 일어나서 다시 반배를 한다.

호흡을 통한 명상법 설명이 이어졌다. 척추를 세우고 바로 앉아 단전에 손을 올린 뒤 호흡을 시작한다. 숨을 턱 정도까지 들이마신 뒤 잠시 1~2초간 숨을 정지하고 다시 길게 내뱉는다. 다시 1~2초간 숨을 멈춘 뒤 숨을 들이마신다. 호와 흡 사이의 단절(정지)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잠시 서 있는 듯하다.

   
절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미황사 대웅보전(보물 947호)에는 단청이 없다. 색이 없는 것은 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색이 바래졌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천년고찰은 더욱 고색창연하다. 대웅보전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는 게 거북 등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8년(749년) 인도에서 경전과 부처상을 실은 배가 땅끝 포구에 닿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 배의 상징으로 대웅보전을 지었다. 그래서 갯벌 생물들이 주춧돌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토착신을 모신 삼성각, 석가모니의 뛰어난 제자를 모신 응진당(보물 1183호)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공양간으로 향했다. 미황사 한문학당에 참여한 수십 명의 초등학생이 밥을 앞에 두고 열심히 공양게를 외웠다.

저녁예불을 마친 뒤 금강 주지 스님과 낙조를 구경하고 다담장으로 향했다. 잡담과 함께 하는 맑은 녹차 한잔이 마음을 깨끗하게 했다. 다담이 끝난 뒤 주지 스님 방에서 황지우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를 빌려 숙소로 향했다. 프로필을 보니 황 시인은 공교롭게도 해남 출생이었다. 그의 시 '발작'이 산사에서의 잠 못 드는 밤을 달랬다.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그대를 환영하며/이 곳에서 쓴맛 단맛 다보고/다시 떠날 때/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알고 간다면/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초록빛과 사랑; 이거/우주의 기적(奇蹟) 아녀'.

■고요한 산사의 아침

   
새벽 5시 범종 소리와 염불 소리가 산사의 아침을 깨웠다. 복장을 대충 정리하고 아침예불을 위해 대웅보전으로 향했다. 3배를 마치고 예불문과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읊었다. 아침예불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대웅보전 앞 마당을 한 바퀴 도니 한 사람 앞에 물이 담긴 그릇을 하나씩 주었다. 물그릇을 들고 여기서 15분 정도 떨어진 부도전까지 묵언하며 걸어가라는 지시였다.

부도전은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석조물들이 모인 곳을 말한다. 절에서 부도전까지 말을 삼가며 걸어가며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금강 주지스님은 "한문학당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참여해 이들을 조용하게 하면서도 수행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물그릇을 들고 묵언하며 걸어가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님의 '전략'은 주효했다. 아이들은 꽤나 진지하게 묵언수행에 임했다.

부도전에 다다라 여러 석조물 앞에 분산해 선 뒤 물그릇을 앞에 놓고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가족과 우리나라, 세계를 위한 소원을 한 가지씩 빌고 기아와 질병, 전쟁에 고통받는 전 세계 아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물그릇에 담긴 물 절반은 먹고 나머지는 부도전에 뿌렸다.

다시 절로 돌아와 아침공양을 하니 자유 참선시간이 주어졌다. 대웅보전에서 10분가량 명상을 하고 나서 108배에 도전했다. 팔꿈치와 무릎, 이마를 바닥에 대는 오체투지(큰절)를 108번 반복하자 땀은 비 오듯 하고 허리와 다리통증은 심해졌다. 108배를 하면서 기도를 하기보다 잡념을 없애고자 노력했다. 불교에서의 명상과 기도는 뭔가를 '비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는 사찰 측의 설명을 새기면서.

■아쉬운 끝

   
점심공양이 끝나고 낮 12시가 되자 1박 2일간의 템플스테이 일정이 모두 끝났다. 숙소를 나와 대웅보전을 향해 합장한 뒤 절을 나왔다. 그리고는 이곳에서 만난 일행들과 함께 땅끝마을로 향했다. 미황사에서 읍내인 산정으로 나간 뒤 여기서 땅끝마을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 택시를 탔다. 미황사에서 땅끝마을까지는 대략 20분 정도 소요됐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요즘은 땅끝마을 갈두산 정상에서 땅끝과 다도해를 볼 수 있게 전망대가 설치됐다. 땅끝마을에서 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왕복 4000원)로 이동할 수 있다. 나는 전망대를 포기하고 진짜 '땅끝'(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끝은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한반도 최남단 땅끝이다) 지점인 땅끝탑으로 향했다. 가파른 경사의 내리막길이 500m 이어졌다. 땡볕을 뚫고 도착한 땅끝탑 앞에는 영화 '타이타닉'의 배 모형을 본뜬 조형물이 새로 설치돼 있었다. 조형물의 조악함은 다소 아쉬웠다.

땅끝에서 이번 힐링여행을 곱씹었다. 그 수확은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얻었다는 점이다.


# 해남 미황사 찾아가는 길

부산에서 해남까지는 직행버스(편도 2만4100원)가 있다.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www.busantr.com)에서 해남까지 가는 버스가 오전 7시10분부터 운행된다. 부산에서 순천까지는 고속도로를 타고 직행하지만 순천부터는 벌교 보성 장흥 강진 등을 둘러서 해남으로 가는 완행이다. 소요시간은 5시간. 해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미황사까지는 버스(편도 3500원)로 이동할 수 있다. 소요시간은 40분 정도. 해남~미황사 버스는 하루 4번 운행하며 버스시간은 해남종합버스터미널(061-534-0884)에 문의해서 확인한 뒤 이동하는 것이 좋다. 미황사에서 땅끝마을로 가려면 미황사에서 산정으로 나오는 버스를 탄 뒤 땅끝마을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Total 157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97 "다큐 3일" 해남 미황사, 천년 세월 담은 땅끝의 사찰 운영자 06-19 1300
96 “해남 미황사서 템플스테이 한국의 정신문화 매력적”여수엑스… 지혜 08-25 932
95 미황사 힐링스테이-국제신문 지혜 08-25 1042
94 힐링이 있는 길 ① 해남 미황사 ‘천년 역사길’-중앙일보 지혜 08-25 846
93 청년들, 불교서 삶의 대안을 찾다 - 불교신문 (1) 금강 07-04 950
92 20대 청춘들, 산사서 아픔 치유하고 마음출가 - 최호승기자 금강 07-09 1170
91 "내 삶의 전환점이 돼준 청년출가학교" 어현경기자 금강 07-09 975
90 수행하고 치유하는 내마음속 고향집 - 불교신문 금강 07-05 947
89 땅끝해남, 땅끝해남 미황사 한문학당 - 조선일보 금강 07-04 810
88 중앙일보 기자들의 1박 2일 해남 나들이 - 미황사 템플라이프 구름의저편 04-06 762
87 우리가 사는 곳이 그림이고 명승이다 금강 09-22 1298
86 [테마가 있는 가족여행] 미황사 템플스테이_주간한국_2009년2월2… (1) 박종선 04-06 3568
85 백년동안 버려진 절, 두 스님이 되살리다, 조선일보, 2008.10.9 (1) 팀장원산 10-10 4531
84 ‘사랑받는 절’ 미황사엔 금강·현공 스님 공력 있었네, 한겨레… 팀장원산 10-10 4813
83 산사음악회- 불교신문 07.10.13일자 길상화 10-17 6030
 1  2  3  4  5  6  7  8  9  10    
385 547 848,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