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9-17 20:29
내가 머무는 공간은 어느곳이나 수행도량
 글쓴이 : 금강
조회 : 510  
내가 머무는 공간은 언제나 여여한 수행 도량
 
새벽예불과 참선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전화가 왔다. 어지간하면 이른 아침에는 전화가 오지 않는다. 낯선 번호였지만 급한 전화일 것 같아 받았다.
스님, 제 남편이 인천의 한 병원에서 암투병중이에요. 한 달 전 맑은 의식 상태에서 제게 한 마지막 말이 미황사에 내려가 금강스님과 차 한 잔 나누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임종을 준비하라기에 그 말이 생각나서 전화 드렸습니다. 제 남편에게 스님 목소리라도 들려주실 수 없을까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산소호흡기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와 이산혜연선사의 발원문을 염불송으로 들려주고, 함께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였다.
 
매월 진행하는 8일 동안의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마치고 하산하는 수행자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저의 바람은 지금부터 여러분이 수행자로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미 출가하여 산중에 살고 있는 스님들 보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수행이 더 필요합니다. 제 역할 은 여러분의 수행 길에 마중물이 되는 것입니다. 깊은 곳의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질할 때 들이붓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처럼 여러분의 수행 길에 안내자가 되고 싶습니다.
최적의 수행 공간을 만들어 언제든지 찾아오면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 세간 속에서 지혜롭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또 잘못된 사고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바른 길을 안내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수행에 대한 발심이 일어나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고 싶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내 땅끝까지 찾아온 것만으로도 귀한 발심이기에 온 정성을 다해 그들을 만나야 하는 게 나의 임무이다. 또한 행복한 기회이기도 하다.
참가자가 수행을 하니까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음식을 자극적이지 않게 만들고, 끼니마다 새로운 반찬을 올리도록 신경을 쓴다. 방은 깨끗하게 몇 번씩 확인하고, 이부자리도 까슬까슬하게 빨아둔다. 참선방석도 빳빳하게 풀을 먹여 앉으면 금세 기분이 상쾌하도록 준비를 한다.
잊고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에 ! 내가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행복했던 순간이 미황사에서 참선하던 때였지.’ 하고 생각해 준다면 수행 도량을 지켜온 내 삶도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중국 송나라 때 종색선사는 선정을 닦는 수행은 누구에게나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조용히 좌선하여 사유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매사에 지금, 여기의 자기 자신을 상실하여 정신없이 멍청하게 살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이 우화 속에 나오는 동물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토끼가 나무 밑에 낮잠을 자다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꿈을 꾸었다. 마침 도토리하나가 토끼의 귓불을 때리며 떨어졌는데 착각을 하고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토끼의 행동에 놀란 여우가 뒤이어 뛰고, 사슴 꿩 코끼리 다람쥐 등 숲속의 동물들이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따라 뛴다. 그들을 기다리는 끝은 위험천만한 낭떠러지. 우리의 삶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학교 동창들, 같은 나이 또래, 형제들, 지역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핸드폰, 자동차, 가방, , TV, 카메라, 집 등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신제품과 끊임없이 비교를 한다. 정작 자신의 삶은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으면서 비교하고 취하고 버리는 삶을 되풀이 한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의 사회로 인한 무가치한 뜀박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속에 떨어진 구슬을 찾으려면 먼저 물결을 가라앉혀야한다. 물결이 일렁이면 구슬을 찾기가 어렵다는 좌선의坐禪儀의 가르침처럼 좌선수행을 통해서 물이 깨끗하고 맑아지면 마음이라는 구슬은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 원각경에도 걸림 없는 지혜는 모두 선정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새벽예불 때면 항상 암송하는 스님들의 발원문을 행선축원行禪祝願이라 한다. 내용 가운데 암송 할 때마다 힘주어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나의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를 면하고
나의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소서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기를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하여
결국 부처도 중생도 없는 세계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문아명자면삼도 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 見我形者得解脫
여시교화항사겁 如是敎化恒沙劫
필경무불급중생 畢竟無佛及衆生
 
나는 이 구절을 내가 살고 있는 절로 대입을 시킨다. 바쁘고 힘들고 지쳤을 때 TV나 라디오, 신문, 인터넷에서 미황사라는 이름을 듣거나 보기만 해도 힘과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든든한 마음의 고향이 되려면 이름값에 걸 맞는 활동을 해야 한다.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닌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활동 말이다.
언젠가 주지 임명장을 받고서 밤새 그 무게감 때문에 고민한 적이 있다. 천이백년의 역사 를 가진 사찰의 주지 소임이었기에 고민이 깊었다. 자칫 작은 실수로 긴 장강의 역사를 써온 미황사의 궤적에 누를 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좋아하는 절은 들어설 때부터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이 들고, 극락세계에 들어 온 것처럼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곳이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절은 모든 이에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가는 곳이다. 그러니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허투루 놓거나 심을 수 없다.
천년이 넘는 호흡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미황사. 이곳에 사는 대중들의 신실한 말과 행동과 마음이 얹어졌을 때 미황사는 비로소 그 가치가 살아 움직인다. 그러함을 알기에 이 가람을 외호하며 사는 일이 늘 조심스럽다.
농담 삼아 외국 어디에 미황사 같은 절이 있다면 나도 한 달 쯤 머물다 오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절을 가꾸듯 사람들도 자신의 공간을 좋은 수행처로 가꾸었으면 좋겠다. 집이 수행처라면 수행대중은 물론 그의 식구들일 터. 회사에 가면 그곳이 수행 도량이 되고 직장 동료들이 수행대중이 됨은 물론이다.
자신의 공간을 수행의 처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날마다 노력이 필요하다. 울력시간을 만들어 집 안팎을 청소하고, 물건들은 항상 단정하고 단순하게 정리한다. 번뇌를 버리듯, 쓸모없는 물건은 쓸모 있는 사람에게 과감하게 나누어 준다.
방은 평화롭고 안락한 법당과 선방이 된다. 집안에서도 옷은 단정히 하고 말은 정중하고 부드럽게 한다. 혼자 있어도 많은 대중과 함께하듯 절도가 있어야 한다. 안으로는 지혜롭고 밖으로는 자비롭게 마음을 쓴다.
이와 같이 자신만의 수행 처소를 정갈하게 만들어 간다면 내 이름은 타인에게 떨리는 기쁨의 이름이 되고, 내가 머무는 공간은 언제나 여여한 수행 도량이 되지 않겠는가.

이재숙 15-09-18 09:58
답변 삭제  
스님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다니는  절에  주지스님도  늘  스님과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늘  깨어있는삶...
늘  수행자의삶을  살아야된다고요...
전  미황사가  너무 생각납니다
지금도  가고싶어요  ㅎ
그러나
내가  머무는 공간은  어느곳이나  수행도량 "  이라는  스님말씀
새깁니다.

부산에서  원명합장__()__
지금이순간 15-09-21 17:46
답변  
스님,
참향을 처음 참여할때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지만, 이렇게 대접을 받고, 소소한 것 하나까지 신경써주시는 것에 감동입니다.
회향식 책상을 새하얗게 다림질된 천으로 덮어주시고, 좌선 방석도 처음 앉는 사람들이 좀 더 편안게 앉을 수 있는 것에 신경써주시고, 효소, 토마토주스, 생강차, 밥과 반찬들이 모두 너무 정성스러워서, 감동 감동이였습니다.

제방이 많이 지저분해서 수행도량처럼 대청소를 하고, TV도 내놯야 겠습니다.
회사의 동료/선후배도 모두 수행도반으로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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